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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빛낸 Londoner


예로부터 영국, 특히 런던은 당대에 가장 뛰어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집결지였다. 그들 중에는 영국의 다른 지역이나 먼 외국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있었고 런던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식을 낳고 산 런던 토박이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런던에 살면서, 거대하고 유서깊은 건물을 설계하거나, 제도나 전통을 세우고, 런던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런던에 그들의 이름을 남겼다. 그들의 영향은 런던에서 시작하여 전세계로 퍼져나가곤 했다.

 

건축가와 기술사

 

런던 태생의 이니고 존스(1573~1652)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 건축의 아버지다. 또한 풍경화가이며 무대 디자이너였다. 그는 그 당시 왕정 건축가들의 거주지였던 화이트 홀의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살면서 일했다. 후헤 크리스토퍼 렌(1632~1723)이 그의 뒤를 이었다.
런던 최고의 건축가인 렌의 계승자는 그의 제자인 니콜라스 혹스 무어(1661~1723)와 제임스 깁스(1682~1754)였다.
건축가들의 세대교체는 성공적이었으며, 그들은 런던을 건설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18세기에 런던을 건설하는 임무를 이어받은 사람들은 로버트 형제(1728~1792)와 제임스 애덤(1730~1794), 존 내쉬, 찰스 배리경(1795~1860), 데시무스 버턴 그리고 빅토리아시대의 알프레드 워터하우스, 노만 쇼, 조지 길버트 스코트 경 등이다. 기술자인 조셉 바잘게트(1819~1891)는 런던의 방직 시스템을 개발했고 템즈 강 제방을 건설했다.

 


화가

 

런던의 화가들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종종 서로 도와가면서 함께 모여 살았다. 화가들이 18세기에 세인트 제임스의 궁 주위에 모여 산 것은 자신들의 후원자와 좀더 가까이 있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윌리엄 호가스(1697~1764)와 조수아 레이놀즈(1723~1792)는 레스터 스퀘어에 살면서 작업했으며, 토마스 게인스버로(1727~1788)는 폴 몰에 살았다.
첼시의 친 워크는 그 빼어난 강변 풍경 때문에 거장 터너(1775~1851),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1828~1882), 필립 윌슨 시티어(1860~1942), 제이콜 엡스타인 경(1880~1959) 등을 포함한 화가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였다. 오거스터스 존(1879~1961)과 존 싱어 서전트(1856~1925)는 타이트 스트리트에 화실을 두었다. 존 콘스터블(1776~1837)은 서포크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동안 햄스테드에 살면서 멋진 히스풍경을 그렸다.

 


작가

 

[캔터베리 이야기]의 작가 제프리 초서(1345~1400)는 어퍼 템즈 스트리트에서 여인숙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극자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593)는 사우스 와크에 있는 극장과 인연이 있으며, 그 근처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 존 단(1572~1631)과 존 밀턴(1608~1674)은 시티의 브레드 스트리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일기 작가 사무엘 페피스(1633~1703)는 플리트 스트리트에서 태어났다.
젊은 소설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캐도건 호텔 부근의 슬론 스트리트에서 한동안 살았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블룸스베리에 있는 피츠로이 스퀘어 29번지에서 살았다. 후에 이 집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집이 되었고, 바네사 벨, 존 메이너드 케인즈, 포스터, 로저 프라이, 그리고 던컨 그랜트 등이 포함된 작가와 예술가들의 모임인 유명한 블룸스베리 그룹의 회합장소가 되기도 했다.

 


정치가

 

황금의 도시를 찾아 딕 휘팅턴이라는 무일푼의 소년이 레전드로 왔다. 그는 훗날 시장이 되었다. 1397년에서 1420년 사이에 세 번이나 시장을 지낸 리차드 휘팅턴(1360~1423)은 유명한 초기 정치가의 한 사람이었다. 첼시의 주인이었던 토마스 모어 경(1478~1535)은 헨리8세 때 대법관이었으나, 후에 왕과 서로 심한 갈등 끝에 처형당한다.
모어는 1935년에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토마스 그레샴(1519~1579)은 왕립거래소를 설립하였다. 로버트 필(1788~1850)은 런던 경찰대를 창설했다. 런던 경찰을 '바비'(로버트의 애칭)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배우

 

넬 그윈(1650~1687)은 배우로서보다 찰스 2세의 부인으로 더 유명하다. 원래 그녀는 드루리 레인 시어터의 무대에 서는 한편 오렌지를 팔았다. 셰익스피어 연극 배우인 에드먼드 킨(1789~1833)과 위대한 여배우 사라 시든스(1755~1831)는 드루리 레인 시어터에서 뛰어난 연기를 한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헨리 어빙(1838~1905), 엘런 테리(1847~1928)는 24년간 무대에서 서로의 상대역을 했다.
케닝턴 태생인 찰리 채플린은 런던의 빈민 가에서 매우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밖에 20세기에 올드빅에서 꽃을 피운 유명한 배우들로는 존 길거드 경(1904~), 랠프 리차드슨 경(1902~1983), 데임 페기 아쉬크 로프트(1907~1991), 그리고 처음으로 국립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된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 등이 있다.

 

 

 

런던을 빛낸 사람들


흔히 'International City'로 널리 알려진 국제적인 문화, 상업, 정치의 중심지인 런던은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런던을 찾은 저명인사들 가운데는 고국의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망명온 사람들도 있고, 단순한 관광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있다.
 

» 메리 시콜(1805~1881)
자메이카 태생의 작가, 크리미아 전쟁 기간 동안 간호사로 활동했다. 그녀는 패딩턴의 타비스톡 스트리트에서 하숙했다.

»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독일의 작곡가, 1877년에 로열 앨버트 홀에서 지휘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베이스워터의 오르메 스퀘어 12번지에서 살았다.

» 헨리 제임스(1843~1916)
미국의 소설가, 메이페어의 볼턴 스트리트 3번지와 디 베르 가든 34번지에서 살았으며, 친 워크의 칼라일 맨션에서 죽었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2차 대전 중 메이페어의 그로스베너 스퀘어에 있는 집에서 북아프리카 공격을 구상했다.

» 제니 린드(1827~1887)
스웨덴의 나이팅게일, 켄싱턴의 올드 브롬턴 로드 189번지에서 잠시 살았다.

» 마크 트웨인(1835~1910)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저자인 미국의 소설까.1896년부터 1896년까지 테드워스 스퀘어 28번지에서 살았다.

» 주세페 미치니(1805~1872)
통일 이탈리아의 건축가. 1837년 런던으로 탈출하여 1840년까지 가우어 스트리트 183번지에서 살았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위해 헤이턴 가든 5번지에 학교를 세웠다.

» 칼 마르크스(1818~1883)
독일의 철학자, 딘 스트리트 28번지에 살았고, 대영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썼다.

» 마하트마 간디(1869~1948)
인도 독립의 아버지, 이너 템플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세인트 브라이드레인에 있는 채식 식당인 센트럴에서 식사를 했다.

» 찰리 채플린(1889~1977)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 런던 남부에서 태어나 케닝턴 로드 287번지에서 살면서 런던의 음악 홀에서 경륜을 쌓았다.

» 샤를 드골(1890~1970)
2차 대전 중 칼턴 하우스 테라스에서 파랑스 레지스탕스를 조직했다.

자료출처 : 가자 세계로,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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